신지식 융합학/우주와시간융합

시간이 흘러도 남는 건 기억뿐일까 - 뇌가 시간을 저장하는 방식

news-jianmom 2025. 11. 9. 17:49

서론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도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니면 뇌가 시간을 다르게 저장하기 때문일까. 우리의 뇌는 하루하루를 카메라처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만 선별해 남긴다. 그래서 똑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날은 오래 남고 어떤 날은 금세 잊힌다. 기억은 시간의 부산물이 아니라, 시간의 모양을 만드는 주체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시계가 아니라 기억의 밀도로 결정된다.

시간이 흘러도 남는 건 기억뿐일까 - 뇌가 시간을 저장하는 방식

본론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기능이 아니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인간의 기억이 ‘시간의 지도’를 그리는 능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하버드대 인지신경학팀은 사람이 과거를 회상할 때와 미래를 상상할 때 뇌의 활성 부위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는 과거의 데이터를 꺼내 미래를 예측하며, 이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성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기억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면 뇌는 더 적은 정보를 처리하고, 시간의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즉, 하루의 사건이 단조로울수록 뇌는 그날을 짧게 느낀다.

 

또한 감정은 기억의 강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쁨이나 슬픔, 두려움처럼 강한 감정이 동반된 사건은 뇌의 편도체가 활발히 반응해 오랫동안 저장된다. 반대로 반복되는 일상은 감정의 진폭이 작기 때문에 빠르게 압축된다. 이것이 바로 “어릴 땐 하루가 길고, 어른이 되면 짧다”는 체감의 생물학적 이유다.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새롭고 감정의 폭이 넓다. 반면 어른이 되어 익숙함이 늘어나면 뇌는 ‘새로움의 기록’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한다. 결국 시간의 체감 속도는 뇌가 남긴 기억의 농도와 감정의 깊이에 달려 있다.

 

기억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가 왜 같은 하루를 다르게 느끼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난 날은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사무실에서 반복되는 날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차이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뇌가 남긴 정보의 양이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감각이 활발히 작동하고, 시각·청각·후각 정보가 풍부하게 입력된다. 반면 익숙한 장소에서는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자동 필터링’한다. 이처럼 뇌는 생존을 위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압축한다. 하지만 그 효율이 지나치면 삶은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새로운 취미를 배우거나, 여행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실제로 ‘시간을 되찾는 법’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기억이 단순히 과거를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까지 형성한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기억이 없다면 자아도 없다’고 했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이자 시간의 연속성을 이어주는 실이다. 잊어버린다는 건 단순히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노년기에 과거 회상이 잦아지는 것은 ‘현재의 자신’을 재확인하려는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결국 기억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매 순간 현재를 구성하는 활동이다.

결론

기억은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다. 인간의 뇌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그 과정에서 시간을 스스로 설계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뇌가 ‘새로운 경험의 비율’을 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싶다면, 매일 같은 일상 속에 작은 새로움을 추가해야 한다. 걷는 길을 바꾸거나,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평소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해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새로운 정보를 기록하며 시간의 밀도를 되찾는다. 결국 시간의 속도는 시계가 아닌 뇌가 정한다. 그리고 뇌가 시간을 저장하는 방식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노력이다.